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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A 1-5 세트

전체 5권으로 마무리된 작품의 내용을 통해서, 요즘 학생들의 심리와 함께 학교생활의 면모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여중생 ‘장미래’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성격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인물로 그려지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작품에서는 게임 속 상황들은 컬러로 그려지지만, 현실은 흑백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그리고 외도와 가정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는 뚜렷한 형체가 아닌, 검은 이미지로만 묘사되고 있다. 아마도 ‘미래’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있는 아버지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이 반영된 것이라고 이해된다.   ‘미래’와 달리 학교생활을 주도하고, 때로는 함께 어울리며 집단을 이루는 일군의 학생들이 등장한다. 이른바 ‘엄친딸’이라 할 수 있는 ‘이백합’, 그리고 그를 따르는 몇몇 친구들의 존재들이 우선 주목된다. 매사를 자기중심으로 설계하고 이끌어가는 인물 유형은 단지 학교만이 아니라, 어느 사회에서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관심으로 ‘미래’에게 접근하는 ‘이태양’이라는 캐릭터 또한 결과적으로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주목받기를 원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조금씩 마음을 열면서 만나는 친구들이 생기고, 게임에서 알게 되어 현실 친구가 된 ‘현재희’를 통해서 학교 폭력으로 자퇴를 하게 된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작품이 진행되면서 컬러모 묘사된 게임 속 상황은 조금씩 줄어들고, 현실의 상황을 그릴 때 다양한 색채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새롭게 친구를 만나면서 그동안 기피하던 공간인 학교가 오히려 ‘미래’에게 가고 싶은 곳으로 바뀌는 과정이 그래서 흥미롭게 다가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되는 학교생활이 누군가에게는 아픔과 고통으로 환기되는 시간일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에피소드가 진행될수록 점차 밝아지는 ‘미래’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고, 소극적인 성격도 조금씩 능동적으로 변화하여 다른 이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으로 표출되고 있다. 그리고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후일담까지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는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제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하니, 그것이 웹툰의 느낌과는 어떻게 다르게 형상화될 지에 대해 궁금해진다.(차니)

당대를 드러내주고 위로해주는 만화최근 유명 웹툰 작가가 미성년자 대상 성폭력을 방조했다는 내용이 SNS를 통해 폭로되었다. 다양한 해시태그 운동(#오타쿠_내_성폭력, #문단_내_성폭력 등)의 촉매가 된 이 고발은 문단을 비롯해 미술계, 영화계 등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확산되며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주었다. 고발자들의 발화는 공통적으로 성폭력의 핵심인 ‘권력관계’의 문제를 짚었다. 성인 남성은 사회적, 금전적으로 여성 미성년자와의 관계에서 계급적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문화와 예술이라는 베일에 가려진 착취적 관계로 발전할 위험성을 항상 내재한다. 여중생A 는 이너서클 내 성폭력 사건이 사회적 문제가 되기 전에 이 같은 (성적) 권력관계에 대한 에피소드를 다루며 크게 화제가 되었다(78화 에피소드 참조). 성인 사진작가에 의한 성희롱 위험에 노출된 여중생에 관한 에피소드로 오타쿠 내 성폭력 사건을 예언하듯이 묘사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2016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한 여중생A 는 가장 간단한 그림으로 당대를 드러내고, 위로하는 작품 이라는 평을 받았다. 왕따, 가정폭력, 게임중독, 일진과 학원폭력, 외모지상주의, 여성혐오와 여성인권, 인터넷 신상 털기 등 우리 사회의 민낯과 불평등을 주인공 ‘장미래’의 고민 속에 담담하게 녹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투영의 의미는 그것이 가진 비판적 논점을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방식보다는, 한 명의 여중생이 경험하는 일상과 생활의 단면을 통해 한층 더 투명한 공감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 같은 공감은 잠재적 폭력에 노출된 이들에게 큰 위안이자 연대의 끈이 된다. 나아가 우리는 주인공 미래가 짊어진 ‘여중생’이라는 기표 속에, 사회적 폭력을 은폐하는 상냥함의 세계가 잔존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체적이지 못한 미성년, 그래서 언제나 굴종을 내면화하는 상냥한 여중생의 세계. 그러므로 여기서, 단호한 태도로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고 말하는 장미래는 우리 사회가 그동안 축적해 온 사회적 폭력의 수위를 가늠하게 해주는 리트머스지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