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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한 인생


은희경 장편소설.아쉽게도 <이동진의 빨간책방>이 종영되었고, 그래서 가끔씩 몇 개를 선택해서 다시 듣고 있다. 첫회부터 살펴보다보니 은희경 편(https://www.podty.me/episode/8978576)은 안들었기에 이번에 들어보았는데, 듣다보니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래서 다 들은 후에 자연스럽게 이 책을 구입했다. 왠지 꼭 사서 읽어야만 할 것 같았다.집에 있는 책장을 좀 찾아보니 은희경 작가의 책은 2000년대 초반에 구입한 <마이너리그>가 전부였다. 왠만하면 한 작가의 책을 2권 이상 구입하는데, 한권 밖에 없다니, 아마도 예전에 읽은 후 그다지 감동을 못받았었나보다. 아니면 나와 감성이 맞지 않았었는지도.책은 류의 이야기와 요셉의 이야기로 나뉜다. 어쩌면 여기에 류의 어머니의 이야기가 더해졌다고도 할 수 있다. 책의 시작과 끝은 류의 이야기지만 책은 많은 부분은 요셉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물론 요셉의 이야기 속에는 류의 그림자가 항상 드리워져 있다. 류의 이야기와 요셉의 이야기의 문체는 사뭇 다르다. 그리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방식도. 한 사람은 고독으로부터 벗어나고 있고, 다른 사람은 고독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책의 이야기만 보자면 작가의 삶에 대해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다. 하지만, 굳이 작가만 그런 것일까, 우리의 삶이, 바로 나의 삶이 그런 것은 아닐까.패턴이란 단어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패턴에 따라 사는 것을 거부하는 요셉. 패턴에 따른 소설도 거부하는 요셉. 그를 보면서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패턴을 거부하지만 패턴에 맞춰 살아가는 나 자신의 모습을. 이율배반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패턴이란 단어가 워낙 많이 등장하다보니 패턴을 중요하게 생각한 <생각의 탄생>(http://blog.yes24.com/document/10896654)이 잠시 떠올랐다. <생각의 탄생>에서는 창조적인 사고를 위한 생각의 도구로 패턴 찾기 가 나오는데... 물론 이 소설에서의 패턴 과 <생각의 탄생>에서의 패턴 의 쓰임새가 다르다. 그냥 문득 생각났다는 것일뿐.책을 다 읽은 후 빨간책방을 다시 들었다. 빨간책방에서 이야기하는 것들, 분석했던 것들, 작가가 말한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음미했다고 해야할까? 그리고 찾아보니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에도 있기에 들었다.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에서는 류의 이야기 부분만 읽어주었는데, 김영하 작가가 읽어주는 류의 이야기는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하나의 단편소설이었다. 따로 떼어서 읽어보면 그렇다는 이야기.여러 팟캐스트를 듣고, 책을 읽고 그러다보니 이 책이 좋은 책인지는 모르겠는데, 뭔가 쓸 것이, 생각할 것이 많은 책인 것 같다. 그런 것들이 많지만 정리는 잘 안되고, 그래서 또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네. 사실 재미에 대해서는 so-so, 하지만 뭔가가 있다. 그 무언가가 이 책을 계속 읽게 한다. 그리고 이렇게 무언가를 적게 한다. 아주 태연하게.아 참, 그래서 앞으로 은희경 작가의 책을 다시 구입할거냐고 묻는다면 어쩔 수 없이 그 동안의 패턴에 따를 것 같다. :)살아오는 동안 류를 고통스럽게 했던 수많은 증오와 경멸과 피로와 욕망 속을 통과한 것은 어머니의 흐름에 몸을 실어서였지만 류가 고독을 견디도록 도와준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삶에 남아 있는 매혹이었다. 고독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적요로운 평화를 주었다. 애써 고독하지 않으려고 할 때의 고립감이 견디기 힘들 뿐이었다. (p.265)이동진의 빨간책방: 8회1부 태연한 인생(with 소설가 은희경) https://www.podty.me/episode/8978576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47 은희경 "태연한 인생" http://kimyoungha.libsyn.com/-47
특유의 섬세한 시선과 지적이고 세련된 문장, 삶의 진실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통찰은 늘 우리를 열광하게 해온 은희경의 신작. 등단 16년, 매 작품마다 다양한 변신을 선보여온 그의 작품세계는 이제 더 깊어지고 여유로움마저 갖추었다. 2년 만에 선보이는 새 장편 태연한 인생 은 그간 집적된 은희경 소설의 성취들이 고스란히 담긴 은희경 소설의 빛나는 정수를 보여준다. 사랑과 상실과 고독에 대한 빛나는 문장들이 다시 한번 우리를 은희경 소설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태연한 인생 을 이끌어가는 것은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냉소적이고 위악적인 소설가 요셉과 신비로운 여인 류.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개성적인 인물들이 이야기를 더욱 다채롭게 한다. 소설은 류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무책임하고 즉흥적이며 한순간의 매혹에 쉽게 몸을 던지는 아버지와, 반면에 생활과 가족이라는 서사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고독과 고통을 감내하기를 선택했던 어머니. 류의 전사(前史)에는 그렇게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두 세계가 있었다. 류는 고백한다. 살아오는 동안 류를 고통스럽게 했던 수많은 증오와 경멸과 피로와 욕망 속을 통과한 것은 어머니의 흐름에 몸을 실어서였지만 류가 고독을 견디도록 도와준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삶에 남아 있는 매혹이었다. 류는 그 매혹에 이끌려 한때 요셉을 열렬히 사랑했지만, 마지막 한 걸음 앞에서 그를 떠났었다.

소설은 요셉의 일상과 류의 과거사가 교차되며 두 세계의 겹침과 엇갈림을 그려나간다. 자기 자신을 포함한 타락한 세계를 향해 던지는 요셉의 가차없는 독설은 날카로우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연민을 자아내고, 감추어진 듯 언뜻언뜻 드러나는 류의 서사는 아련하고 서정적인 색채로 이야기 전체를 감싸안는다. 그리고 곳곳에 깔린 삶과 사랑에 대한 깊은 통찰이 섬세한 문장으로 겹겹의 층을 이루며 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 매혹과 상실, 고독과 고통, 오해와 연민에 대해 오래 곱씹게 하는 그 빛나는 경구들은 물론 은희경 소설을 읽는 큰 즐거움이자 그 자체로 머릿속에 외우고 다니고 싶어질 정도로 매력적이다. 날렵함과 통쾌함을 지나 점차 깊고 묵직하고 어딘가 쓸쓸하기까지 한 느낌을 더하는 그 문장들에서 은희경 소설세계의 또다른 변모를 감지하는 것 또한 설레는 일이다.

태연한 인생 은 연애소설이면서 세태소설이자, 빼어난 교양소설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우리 시대 인생과 사랑에 관한 매력적인 성찰과 사색을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녹여낸 수작이자, 은희경 문학의 탁월한 한 성취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다. 은희경을 읽는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반가운 기쁨으로 다가갈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