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는 보통 임진왜란이라고 명칭한다.일단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은 임진왜란이 맞다.이름에는 모두 사연이 있다. 왜란 (倭亂)이란철저히 우리를 피해자로 규정하고자 하는 피해자로서의 억울함이 속절없이 드러난다. 반면 어쩔 수 없이 도와줬다는뜻에서 중국은 원조선 (援朝鮮)이라고 일컫는다. 전쟁의 기억은 그들이 소모한 병사와 화포와 외교를 넘어서희미한 것이 된다.조선의 참화 따위는 점차로 종이조각에말라가는 먹물의 흔적마냥 석화(石化)되었다. 스스로 저지른 전쟁에서 전쟁의 목적이 과대한 기획력으로 점철되었듯이 열도일본은 육십갑자를 버리고 독자연호를 붙인다. 문록·경장의 역(役). 아무래도 일본식 이름에는 미처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어린 아이가 처음으로 똥오줌을 가리고 난 뒤 속시원해하는 치기(稚氣)같은 게 서려있다. 문득그런 생각이 든다. 책에서 전쟁의 현상을 삼투(渗透)현상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요동 지역의 권력공백과 일본 열도의 권력과잉은 그 설명의 핵심 축이다. 일본은 오래도록 명국이 주도하는 제국질서로부터 소외되어있었다. 권력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려 하므로오랜 전쟁 경험으로 한껏 무장된 일본열도의 잠재된 힘은 스스로의 명령에 따라 요동방향으로 진출하고자 발기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발기가 권력의 묽은 지점을 더듬어 거침없이 파고들어가는 그 모습이 참혹하다고 생각된다. 조선은가장 가까운 길목에서 요동을 가로막고 있었으므로길목이 아니라 그들에게 길막이었다. 이 비참한 지정학적 운명을 조선은 문화적 우월감과 명에 대한 사대의 충의(忠義)로 굳세게 버티고 있었다. 인상적인 부분은 언제나 기존의 통념을 통념으로 규정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안하는 지점이 아닌지. 통념대로라면 명말 만력제에 이르러 대륙은 권태와 향락에 빠져있었고 반도 조선은 동인과 서인의 지루한 논쟁 속에서 왕권을 사수하고자 고전했던 선조(宣祖)의전전긍긍으로 앓고 있었다. 과대망상과 아들과 남동생의 죽음으로 정신이 혼미하였던 풍신수길은 어느덧 자신의 손에 막강한 무력이 쥐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이것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날뛰어도 감히 막아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곧장 대륙으로 달려들어가겠다고 미약하고 어리석은 조선의 사신을 꾸짖었다. 어쨌든 수길은 명에 입조하려하니 조선은 길을 내어달라 거만떠는 섬나라 사신을 보냈고, 명에게 조선의 절반을 내어놓으라 으름장 놓으며조선의 도공은 모조리 붙잡아 뿌리뽑듯이 열도(列島)로 뽑아다 박아두는 다이묘의 장수들을 나무라지 않았다.그러나 이 국제학술회의에서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물론 그것은 학자 개개인의 개별적인 지적이겠지만 각종 문헌자료에서 의문시된다. 만력제는 과단성 있게 각지의 반란과 반역을 진압하고자 임했으며 조선은 생각보다 강력한 화포를 가지고 있었고 수길은 생각보다 제정신이었다. 은20만냥을 내어달라 하면 만력제는 순순히 응하여 방비하도록 명했다. 선조가 곧 압록을 넘어가고자 했으나 신료들에 의해 조선은 지탱되어서 마침내는 외교적 수완으로 명으로부터 수만의 원병을 수혈받는다. 그들에게는 멀리 나가고 위력적인 화포와 튼튼하고 커다란 함선과 이순신이 있었다. 비록 수길의 기획은 담대했으므로 망상같았지만 그가 밟고 앉은 막강한 무력 아래서 저로서는 정당한 힘의 분출을능숙하게 단속하고 있었다. 기존의 사료 나열로 끝이 나는 임진왜란 도서가 있었다면 이 책은 아마 다르다. 충실하게 사료를 번역 나열한 점도 있지만 각 챕터마다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자 노력했다. 학술회의를 정갈하게 다듬어 출판하고자 기획되었기 때문일 것같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저마다의 사연으로 이 국제전쟁을 기억하고 있다. 이름이 다른건 의미가 달라서다. 이름의 부여란 의미가 원래 그러했던 바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억도 그렇다. 미처 언급하지 못했지만 우리가 만들어낸 전쟁의 기억은 본디 그것의 사실대로 우리에게 기억되지 못한다. 책에서 지적하듯 논개, 이순신, 히데요시 모두가 그렇다.우리가 이 오래된 전쟁을 말하고 싶어 한다면 적어도 견문을 위해서 이책을 참고할 만하다. 엮은이 중에 정두희 선생은 차분하지만 명확한 지적으로 우리가 역사를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려줬던 사람이었다. 말미에 이르러 선생이 그립다.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은 2006년 6월 서강대학교 국제한국학센터의 주최로 임진왜란의 최대 격전지 가운데 하나였던 경상남도 통영에서 ‘임진왜란: 조일(朝日)전쟁에서 동아시아 삼국전쟁으로’란 주제로 열렸던 국제학술회의의 결과를 담고 있는 책이다. 책은 익히 한국과 일본의 전쟁이라고 알려진 임진왜란을 전근대 역사에서 한·중·일 삼국이 개입한 거의 유일한 대규모의 전쟁, 동아시아의 전쟁 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저자들은 동아시아 삼국이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자국이 승리한 전쟁으로 미화시켜 온 과거의 연구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 전쟁에 대한 기억이 만들어져 가는 양상을 파헤쳐 보이며, 또한 이 전쟁을 동아시아 세계의 국제적 전쟁이라는 관점으로 재구성해 보고 있다. 저자들은 전쟁에 대해 한·중·일 동아시아 삼국이 모두 자신들의 국가사에서 (전쟁의 참상은 덮어두고) 오로지 그 국가의 영광을 드러내는 역사 서술로 일관해 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이 좌절되고 더불어 그의 정권이 단명으로 끝나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중국 명나라는 청나라에게 정복되었으며, 조선왕조는 멸망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임진왜란의 상처는 왕조의 끝 무렵까지 깊은 영향을 남겼다. 전쟁은 7년에 걸쳐 참혹하게 진행되었지만, ‘패자가 없다’는 역사 서술에 대한 의심을 통해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의 실상을 파헤침으로써 또 다른 전쟁의 시작과 가능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책이다.
1. 정두희(서강대 사학과 교수), 이경순(서강대 사학과)
▶ 16세기 최대 전쟁, 임진왜란
2. 김자현(미국 컬럼비아대 동아시아 언어문화학과 교수)
▶ 우리는 왜 임진왜란을 연구합니까?
3. 정지영(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
▶ ‘임진왜란’과 ‘기생’의 기억 ― 한국전쟁 이후의 ‘논개’에 대한 상상과 전유
4. 요네타니 히토시(일본 근세사 연구자)
▶ 사로잡힌 조선인들 ― 전후 조선인 포로 송환에 대하여
5. 하영휘(가회고문서연구소장)
▶ 화왕산성의 기억-신화가 된 의병사의 재조명
6. 존 B. 던컨(미국 UCLA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
▶ 임진왜란의 기억과 민족 의식 형성 ― 임진록 등 민간전승에 나타난 민중의 민족의식
7. 다카기 히로시(일본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
▶ 근대 일본의 히데요시 영웅 만들기 ― 공신에서 조선 침략의 상징으로
8. 정두희(서강대 사학과 교수)
▶ 이순신에 대한 기억의 역사와 역사화 ― 4백 년간 이어진 이순신 담론의 계보학
9. W. J. 보트(네덜란드 라이덴대 일본·한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조선정벌기(朝鮮征伐記) 속의 임진왜란 ― 전후 한 일본 유학자의 시선으로 본 히데요시
10. 김한규(서강대 사학과 교수)
▶ 임진왜란의 국제적 환경 ― 중국적 세계질서의 붕괴
11. 케네스 M. 스워프(미국 볼 스테이트대 사학과 교수)
▶ 순망치한(脣亡齒寒) ― 명이 참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12. 계승범(미국 UCLA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
▶ 임진왜란과 누르하치 ― 동아시아의 새로운 패자, 누르하치의 시각에서 본 전쟁
13. 케네스 R. 로빈슨(일본 국제기독교대 사회과학과 역사 담당 교수)
▶ 고지도 속에 담긴 일본 ― 조선 지식인이 전유한 일본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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